감정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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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감정이입 2010. 4. 8. 11:39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늘 생각난다. 오늘은 집에가서 을 펼쳐 봐야지. 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성미정 처음에 너는 고독은 날카로운 그 어떤 거라고 짐작했다 고독 때문에 자주 명치끝이 아팠던 너로선 그럴 만도 했다 나이와 더불어 너는 통증에 익숙해 졌다 그러나 통증을 감추기는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있을 때 넌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 고독이 드러나는 게 싫었던 거다 친구들은 그런 너를 떠났다 가족들은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탄식했다 고독은 자주 너의 귀를 막았다 고독에 잠긴 널 불편해하지 않는 건 TV뿐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TV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날 방망이에 맞고 혼자 날아가는 공을 보았다 하얗게 질린 채 공기 속을 회전하는 공에서 넌 터질 듯한 외로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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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라는 이름의 해피감정이입 2010. 2. 4. 14:52
김민정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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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뻑이다가감정이입 2010. 1. 29. 19:11
최정례 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이다가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젖은 천장의 얼룩이 벽을 타고 번져와 무릎 삐걱거리고 기침 쿨럭이다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할까 헛손질만 하다가 말듯이 대접만 한 모란이 소리 없이 피어나 순한 짐승의 눈처럼 꽃술 몇 번 껌벅이다가 떨어져 누운 날 언젠가도 꼭 이날 같았다는 생각 한다 해도 그게 언제인지 무엇인지 모르겠고 길모퉁이 무너지며 너 맞닥뜨린다 해도 쏟아뜨린 것 주워 담을 수 없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어 매일이 그렇듯이 그날도 껌벅이다가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냥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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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감정이입 2009. 12. 20. 23:23
-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 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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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감정이입 2009. 12. 2. 17:51
이승원 기다렸다 땅 밑에서 흙 속에서 겨울에 얼면서 장마 때 젖으며 깊이는 아니고 눌릴 만큼만 피학의 사디스트로 잠시 잊혀지고 버려진 채 기다렸다 함정을 파놓은 거미처럼 공사 건물에 웅크린 강간자처럼 걸어오기를 찾아들기를 방울뱀 아가리로 향하는 들쥐같이 디뎌주기를 짓밟아주기를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이건 고어텍스 등산화건 날려버린다 하얀 발목을 검은 눈동자를 뽐내며 짓던 웃음을 달떠서 홀린 신음을 파편으로 박혀 도로 묻히는 날까지 함께 점성술도 타로카드도 바이오리듬도 소용없어 기다렸다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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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감정이입 2009. 12. 2. 12:56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남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 곳에 그러므로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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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7분만 씹고 버려감정이입 2009. 11. 27. 16:19
신현림 거긴 어두워 해님 몇 개 더 보내 줄까 슬픔도 괴로움도 7분만 씹고 버려 시간을 놓치지 마 시간을 벌어야 돼 슬프고 추운 시간을 줄이고 흙내음 같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야지 7년 안에 석유 위기가 온대 7년이 7분처럼 금세 갈 거야 있으나 없으나 맨날 돈 걱정 이러다 죽기 전에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생활은 배처럼 흔들려도 흔들리진 마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마음이 안전벨트가 되어야지 안전벨트가 될 신앙과 환상이 필요해 나는 회의주의자지만 삶은 아름다워 슬프고 가난할수록 꿈의 트롬펫을 불며 가야지 너무 늦었어 너무 나이를 먹었어 쉽게 선을 긋는 말을 버려 감각의 종이란 종 다 울리고 좀 더 다르게 살기를 바라야지 배우고 보고 느낄 것들이 많아 거긴 캄캄해 해님 다섯 개 더 보내 줄까 슬픔도 괴로움..